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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 전상국

기다리는마음 2018. 12. 25. 14:41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두호가 태어났습니다. 내가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을 본 것입니다. 두호의 출생은 우리 식구들뿐만 아니라 가깝고 먼 친척은 물론 이웃 사람들까지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칠대 독자 집안에 사내아이가 또 하나 태어난 이 경사야말로 결코 예삿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뜻하지 않은 기쁨 뒤에는 으레 그 기쁨이 무엇인가에 의해 허물어져 내릴 것 같은 위구심이 일게 마련입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게 마련이 엇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날개 전상국 작가 입니다. 드디어는 그 두려움의 뿌리를 뽑아버리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면 처음의 그 기쁨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뒤이기 예사입니다. 우리 집의 경우가 꼭 그랬습니다. 그때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살아 계셨던 할머니는 둘째손자를 본 기쁨으로 동네 노인들 앞에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어 보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안방을 들랑거리며 두호 기저귀를 갈아 채우면서 그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런 만큼 두호에 대한 할머니의 정성은 너무 극성스러울 정도였습니다. 부정을 탄 사람, 이를테면 초상집에 다녀오는 사람이 우리 대문 근처만 얼씬거려도 야단이 났습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두호도 석 달 열흘간이나 안방 문지방을 넘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날개입니다. 정수리를 만지면 단명하다고 해서 삼 년간 그곳에 쇠딱지를 한 번도 씻어내지 않았습니다. 삼신풀이 굿을 위해 무당이 집안을 들랑거렸습니다. 두호가 베는 베개를 가지고 장난을 하다가 할머니한테 호된 매도 맞았습니다. 매를 맞고 내가 서럽게 울 때마다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너두 이 할미가 다 그렇게 키웠다고. 내가 태어났을 때는 두호의 몇 갑절이나 되는 정성을 쏟았다는 얘기였습니다. 니가 다 복이 많으려니까 동생을 본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아무리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그 대견한 거야 맏솓자에 비할 거냐고 남들 앞에서 내 자랑을 늘어놓던 할머니였습니다. 그런데 할머니한테 이때껏 안 하던 소리를 가끔 구시렁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조상귀신들을 들먹여 입에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망할 영감태기 같으니라고. 몇 해만이라도 더 살다가 갈 것 이지. 두 호과 세상에 태어난 기쁨을 혼자 누리는 죄스러움을 몇 해 전 타향에서 객사한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 섞인 그런 푸념으로 나타냈습니다. 5대 독자였던 할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장가를 가 손자를 낳기까지 안절부절 못하고 공연히 집안 여자들만 들볶았다는 것입니다. 딸 하나를 낳고 꼭 십 년 만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때 할아버지 나이 서른여덟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날개 전문입니다. 이러다간 손자도 못 보고 죽겠다며 투덜거리더니 결국 아버지를 열일곱 살에 장가를 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를 스물둘에 낳았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대가 끊길 것을 염려해 안절부절 못하던 할아버지가 나를 낳은 뒤로 사람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육순이 지난 할아버지가 늦바람이 난 것입니다. 여자라곤 할머니밖에 모르던 할아버지가 이웃 마을에 살던 과부와 눈이 맞아 어디론가 종적을 감췄습니다. 귀신이 덧들인 거지라고 그 일을 두고 할머니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했습니다. 딸 하나만 낳고 아들을 낳지 못한 할머니가 시앗이라도 봐 자식을 보라고 했을 때는 무슨 소리냐고 펄쩍 뛰던 이가 어쩌자고 그 어려운 손자까지 본 뒤에 그런 바람이 불었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점을 쳐봤습니다. 당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복채를 싸들고 점쟁이를 찾아다닌 할머니였습니다. 그럴 때 마다 점괘가 신통하게도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날개 입니다.십 년 만에 아들을 낳을 해까지 알아맞힌 점쟁이도 있었습니다. 이번의 경우 할아버지가 늦바람이 나 이웃 마을 과부와 달아난 일을 두고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집 나갈 팔자구만. 그 소경 점쟁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내버려 둬, 잘 나간 거니까. 억지로 잡아뒀다간 자식 잃을 수여. 요는 집안에 살이 낀 두 사람이 한 지붕 밑에 살게 되면 결국 한쪽 기가 꺾여야 집안이 태평한 법인데 그렇게 되자면 한 사람이 죽는 길밖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그 점쟁이 말을 고스란히 믿었습니다. 집 나간 할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자신의 팔자 푸념을 할 줄 모르는 할머니였다. 네가 하라버이 대신이여. 할머니가 내 등을 긁어주며 가끔 그런 뜻의 말을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갔기 때문에 우리 집의 손이 끊이지 않게 됐다는 뜻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날개입니다. 집 나간 할아버지가 돌아온 것은 내 나이 여섯 살 때였습니다.거적주검이 돼 돌아왔습니다. 할아버지와 함께 도망쳤던 그 과부가 아편쟁이였던 것입니다. 논 몇 마지기 팔아가지고 나간 뒤 그 돈이 다 떨어지자 그대로 거지가 되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습니다. 끝내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객지에서 거적주검이 된 할아버지 소식을 처음 듣던 날 할머니는 젖을 더듬는 내 손을 무섭게 뿌리쳤습니다. 그때 나를 쏘아보던 할머니의 그 눈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지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할머니의 눈에는 적의 같은 게 번쩍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사를 치르고 이태 만에 엄마가 아이를 배자 할머니는 점쟁이부터 찾아갔습니다. 아들을 낳겠구먼. 점쟁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야. 입맛을 쩝쩝 다시며 그랬습니다. 할머니가 무슨 얘기냐고 다그쳐도 점쟁이는 속 시원한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기를 낳거든 그 출생 일자를 맞춰 다시 한 번 와보라고만 했습니다. 그러나 두호를 낳기가 무섭게 그 점쟁이를 찾아갔을 때는 이미 그는 서울 어디론가 이사를 가버리고 만 뒤였습니다. 다른 점쟁이들을 찾아다녔지만 별 신통한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할머니는 오직 얼마 전의 그 점쟁이 말만을 마음에 새록새록 되새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두호가 세 살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엄마와 함께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때 군대에 들어가 집에 없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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